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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나고야의 영웅이자 천하를 움켜쥔 세 명의 무장, 노부나가, 히데요시, 그리고 이에야스

나고야의 영웅이자 천하를 움켜쥔 세 명의 무장, 노부나가, 히데요시, 그리고 이에야스





일본 전국시대에 통일을 위해 싸워,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온 세 명의 무장 '천하인(天下人)'은 나고야 지역 또는 그 주변에서 태어났습니다. 세 명 모두가 지금까지도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지만, 모두 다른 성격을 가진 인물들이었습니다. 이 세 명의 성격을 잘 나타낸 노래가 있습니다.
울지 않는다면... 죽여버릴 테다, 두견새야!
-오다 노부나가
울지 않는다면... 울게 해 보이련다, 두견새야.
-도요토미 히데요시
울지 않는다면... 울 때까지 기다리련다, 두견새야!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 노부나가

가장 수수께끼에 싸여 있는 인물이면서, 혁신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전국시대 사무라이의 지도자 중 한 명이 오다 노부나가입니다. 나고야 지역 출신으로 노부나가에 관련된 곳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오케하자마 전투가 있었던 장소입니다.

1560년, 이마가와 요시모토와 그가 이끄는 2만 5천을 넘는 병력이 노부나가의 영지를 공격해, 오케하자마로 알려진 구릉 지대에 진지를 구축했습니다. 노부나가는 기요스 성을 출발해 적의 10분의 1에 불과한 2천 5백 명 안팎의 병사만으로 적을 끌어들여, 성에서 공격을 가하는 것이 아닌 그 나름대로의 병법으로 침략자를 공격하려 했습니다.

도중에 노부나가와 그의 신하들은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일본에서 두 번째로 신성하다고 여겨지는 신사 '아츠타 신궁'에 잠깐 들렀습니다. 참배를 하기 위해 새전(賽銭)을 했는데, 노부나가와 그의 신하들이 던진 5개의 동전이 모두 같은 면을 향해 있는 것을 보고 운이 따를 거라고 확신하며 기뻐했다고 합니다.

현재의 나고야시 남쪽 교외에 있는 오케하자마로 신하들을 이끌면서 노부나가는 길을 멀리 돌아 이마가와의 거점을 바라볼 수 있는 장소로 향했습니다. 노부나가가 공격을 가했을 때, 이마가와의 사무라이들은 가장 최근에 있었던 전투의 승리를 축하하고, 자신들이 안전한 장소에 있다는 생각과 6월의 따뜻한 기후에 안심하며 무기를 내려놓고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노부나가 진영은 대장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진영으로 곧바로 달려들어 뒤통수를 쳤습니다. 이마가와의 목은 바로 베어졌고 노부나가는 승리를 선언했습니다. 이 실제 전투와 관련된 장소가 두 곳 있습니다. 나고야시 미도리구의 작은 공원과 도요아케시의 공원입니다. 요시모토가 살해된 공원의 젠쇼지(善照寺) 요새와 패배한 요시모토의 목이 묻힌 쵸후쿠지(長福寺), 노부나가가 현지 주민들에게 전사자를 매장하도록 명한 나나츠즈카(七ッ塚)의 흔적 등, 현지의 지도와 표지판들이 노부나가, 그리고 이마가와 요시모토와 연이 깊은 장소로 안내해 드립니다.

멋진 승리를 거머진 뒤, 노부나가는 아츠타 신궁의 신에게 감사하며 이 신성한 경내를 보호하기 위해 거대한 문과 흙, 기와로 된 높고 두터운 담을 쌓았습니다. 이 문과 담의 대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의 공습으로 파괴되었지만, 노부나가의 담으로 알려진 담의 일부가 아츠다 신궁을 둘러싸고 있는 숲속에 보존되어 있으며, 노부나가가 오케하자마 전투 전에 참배를 했듯이 신에게 소원을 빌러 오는 사람들과 노부나가의 팬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노부나가는 나라를 하나로 모아 지배하고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그 후 몇 년간 더 승리를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1582년, 일본 통일을 눈앞에 둔 그때, 노부나가가 매우 신뢰했던 장군 중 한 명인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가 돌연 배신하여, 교토의 혼노지에서 노부나가를 공격했습니다. 그의 주변은 혼전 상황으로 빠졌고, 부상을 당한 노부나가는 절 내부에 불을 지르고 사무라이의 삶의 방식을 따라 할복 후 불길에 삼켜졌습니다.
아츠타신궁
아츠타신궁
아츠타신궁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신분이 낮은 보병 아시가루(足軽)의 아들로 태어나, 날카로운 지성과 교묘한 정치적 재능으로 노부나가군의 지위를 차지했습니다. 히데요시는 그의 주군이었던 노부나가를 아케치 미츠히데가 배신하고 살해했을 때, 현재의 오카야마 현에서 전투 중이었습니다. 히데요시는 바로 전투 상대에게 화해를 청하여 군사를 회군시키고, 불과 며칠 사이에 군사를 교토에 배치하여 아케치군과 충돌하여 승리했습니다.

주군의 죽음을 복수함으로써, 히데요시의 지위는 오다 가문의 가신들 사이에서 더욱더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히데요시는 이를 이용해 위대한 노부나가의 자손과 가신들을 신중하게 다뤄가며, 노부나가의 손자인 산보시(三法師)를 이용해 권력을 차지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히데요시는 나고야시 나카무라 공원 내에 위치한, 현재 도요쿠니 신사가 있는 장소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신사 서쪽으로 약 80m 지점에는 히데요시 기요마사 기념관이 있어, 히데요시와 그의 사촌인 무장 가토 기요마사에 관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사 동쪽으로 약 80m 지점에는 조센지(常泉寺)가 있으며, 최고 직위인 다이코(太閤)로 출세하게 된 히데요시의 상과 히데요시가 심었다는 나무, 그리고 이 땅의 영웅들이 보유했던 다양한 유품 등도 있습니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가 추진했던 천하 통일의 유업을 계승해, 1598년 사망 전에 마침내 전쟁으로 황폐된 나라에 평화를 가져왔지만, 결국 5살배기 아들을 남기고 하늘로 떠났습니다. 도요토미의 치세를 유지하기 위해 히데요시는 가장 영향력 있는 전국 다이묘(戦国大名)로 구성된 고다이로(五大老)를 조직하여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그를 대신하여 통치시켰습니다. 이 고다이로의 수장을 맡은 사람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였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에야스는 전국 시대에서도 가장 전쟁이 가장 치열했던 1543년에 아이치 현의 오카자키 성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다스렸던 땅의 서쪽 지역은 오다에게, 북쪽과 동쪽은 이마가와에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동맹이 필요했지만, 누구를 신뢰하느냐의 문제가 그와 가신들 사이에서 싸움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이마가와와 동맹을 맺기로 결정한 그는, 당시 여섯 살의 이에야스를 인질로서 이마가와에게 보내기로 합니다. 하지만 이마가와에게 이에야스를 인질로 보내는 일을 맡은 사무라이가 오다와의 동맹을 지지하여, 결국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의 부친에게 보내져 버리게 되었습니다. 여섯 살 때부터 아홉 살 때까지 이에야스는 오다의 인질이었으며, 후에는 인질 교환에 의해 이마가와 요시모토에게 보내졌고 그 후 10년을 이마가와의 인질로 지내게 됩니다.

이에야스가 이마가와 가문에서 해방된 건 그가 열아홉 살이 되던 해인 1560년입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오다 노부나가에게 살해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이에야스는 후에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었고, 그 뒤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손을 잡았습니다.

히데요시 사후 2년 후인 1600년, 나라는 도요토미 측의 서군과 이에야스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동군으로 분열됐습니다. 양군은 나고야의 불과 50km 서쪽에 있는 일본의 중심지 세키가하라(関ヶ原)에서 최대의 격전을 벌였습니다. 16만 명의 사무라이가 7시간 동안 격전을 벌인 끝에 이에야스가 승리를 쟁취했고, 그로부터 2년 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막부의 수장을 가르키는 쇼군의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요토미의 충신들이 오사카에 있는 동안에는 싸움이 생기게 될 여지가 있었습니다. 서군이 동군의 영토로 들어가는 것을 막고 이에야스의 거점인 에도(지금의 도쿄)를 지키기 위해 건축된 것이 나고야의 성입니다. 이 매우 장엄한 성은 이에야스가 어린 시절에 인질로 잡혀 있었던 오다의 성 바로 위에 지어졌습니다. 나고야 성은 훌륭한 설계를 기초로 건축된 가장 인상적인 성 중 하나로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붕에 황금 샤치호코 장식이 있는 나고야 성에서 이에야스는 두 번에 걸쳐 오사카를 공격해, 도요토미의 마지막 흔적까지 모두 파괴하고 일본 전국의 지배자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했습니다. 그는 그로부터 2년 후인 1616년에 73세로 사망했습니다.

나고야 성과 이곳의 걸작인 혼마루 어전은 나고야에 오시면 꼭 방문해야 할 대표적인 명소입니다! 이에야스의 아들이자 나고야의 초대 번주인 요시나오의 후손들은 성을 유지, 관리했고, 1868년 막부가 타도 된 때에 나고야 성을 정부에 인도했습니다. 나고야 성은 1930년에 처음으로 국보로 지정된 성이기도 합니다. 도쿠가와가 거점을 둔 나고야에는 후에 도쿠가와 미술관이 세워져, 다이묘의 무기, 갑옷, 수많은 국보 지정품을 포함한 예술·공예품, 에마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보유한 유품 등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에 인접해 있는 도쿠가와엔과 나고야 성은 나고야의 손꼽히는 필수 명소입니다.
나고야성
나고야성
도쿠가와 미술관

영웅들의 고향, 나고야

천하를 거머쥔 이 세 명의 영웅들의 정신은 나고야 곳곳에 확실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그 정신을 느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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